꿈
아빠가 죽는 꿈을 꿨습니다. 제가 당도한 꿈속 장면은 아빠 장례식장 첫째 날이었습니다. 꿈이 가진 특성상 저는 그 상황 속 배우로만 존재해서 그 감정을 온전히 감내해야 하잖아요? 그러니 저는 그 상황 속에서 그저 아빠가 어떻게 죽은 줄도 모르고 허망하게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거예요. 장례식장 한가운데에서. 그냥 슬픈 거죠.
그 꿈은 아득한 미래나 과거 또는 말도 안 되는 허구 속 상황이라기보다 정말 바로 지금, ‘완전 요즘 내 아빠’의 죽음을 묘사했기에 제가 체감되는 느낌이 더 사실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친의 부고 문자를 보내기 위해 그의 휴대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부를 찾을 땐 눈물에 가려 흐릿해진 휴대폰 화면만을 바라보며 통곡했습니다.
꿈이 으레 그렇듯, 잠에서 깨어난 뒤 몇 시간 만에 ‘아빠가 죽는 꿈’은 형체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희미한 뉘앙스와 느낌만 남기고 말이죠. 그래도 저는 그 꿈 덕에 오늘 하루 내내 ‘아빠의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언젠가는 받아들여야 할 상황을 꿈을 통해, 오늘 하루 매우 현실적으로 시뮬레이션해 본 것이지요.
제가 (꿈속) 장례식장에서 느꼈던 감정은 슬픔입니다. 평소 아빠에게 서운했던 것, 화났던 것,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같은 주로 부정적인 기억과 판단을 초월하는 본능적인 슬픔이었지요. 아빠에 대한 불평과 아빠의 죽음은 전혀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그냥 슬픕니다. 머리로 어떤 생각을 계산하거나 상황을 가늠할 틈 없이 가슴이 울리고 터지는 거예요. 그래서 꿈속에서도 ‘이게 가족의 죽음이구나’, ‘이게 사람의 죽음이구나’ 했습니다.
또 ‘죽음은 갑작스럽게 찾아온다’라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차가운 명제가 저의 실상 속으로 확. 들어온 것이지요.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던 상황에서 아빠가 사라져버린 경험은 저를 매우 당황스럽게 했습니다. 왜 이렇게 급작스럽게 죽었느냐고 아빠에게 따져 물을 수가 없게 된 것이지요. 저는 이제 더 이상 아빠를 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냥 없어진 거예요. 아빠가 완전히 사라진 거죠.
제 마음속에는 아빠를 애증 하는 감정이 (아주 조금) 잔재합니다. 아빠를 깊이 사랑하기에 오는 슬픔 같은 것이 조금 있어요. 또 모자 관계와는 조금 다른 부자 관계가 갖는 특별한 무게감 또는 여운 같은 것도 있고요. 동시에 저도 남자인지라 커갈수록 ‘나이 먹은 남자’인 아빠를 이해하는 폭이 커지고 깊어집니다. 아빠를 그냥 보고만 있어도 애잔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지요.
그런데 그런 아빠가 갑자기 죽었다 하니, 감당하지 못할 슬픔 때문에 입을 벌려 울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의 죽음과는 또 다른. (이런 표현이 적절치 않음을 알지만) 무언가 이 아들의 비통한 슬픔 속에는 아비를 향한 그 어떤 ‘불쌍함’도 섞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인생 처절하고 고단한 걸 알아 그런지 그게 그렇게 불쌍하고 슬프더라고요.
죽는다는 건 없어지는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아예 없어지는 거예요. 슬픔도 원망도 기쁨도 감사함도 직접 전할 수가 없지요. 그게 그렇게 슬프더라고요. 비록 꿈속에서 느꼈던 감정이었으나 분명 그것은 ‘천국으로 갔다’, ‘천국에 있다’라는 걸 아는 것과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애잔하다’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인간의 일생은 무언가 애잔해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함도 내가 세상을 살아감도 애잔해요. 인생은 진정 애잔한 것 같아요. 저는 제가 먼저 죽지 않는 한, 제가 더 더 어른이 될 어느 순간 저는 부모님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해요. 당연히 내 부모님께서는 늙어서 평안히 돌아가셨으면 좋겠으나 사람마다 그 죽음의 접점을 어떻게 마주할지 아무도 모르니 마음 한편에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부디 그 순간과 과정 모두 아름다웠으면 합니다. 급작스럽고 찢길 듯 아파도 그 모든 것들이 결국 잘 애잔했으면 좋겠어요.
오늘 꾼 꿈을 계기로, 저는 부모님을 더 사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더 자주 뵙고, 더 자주 통화하고,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비록 제가 감내해야 할 내 인생의 사명의 내용과 또 그것을 잘 달성해내야 하는 열심의 과정이 있겠으나 그래도 “일”에 함몰되어 소중한 것을 놓치고 사는 그런 후회는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아빠를 사랑합니다. 아빠에게 감사합니다. 부디 아버지께서 건강하게 잘 지내셨으면 합니다. 아빠와 아들의 삶이 잘 애잔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